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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행 목사] 1954년 고3때 두 군데 부흥회를 다녔다

학다리고등학교를 다니던 중에 한번은 생각하지 못했던 사고가 터졌다. 친구와 다투다가 발을 질렀는데 그만 상대방 친구가 실명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장래의 꿈은 커녕 퇴학에 감옥까지 가야할 수 있다는 위기가 찾아왔다. 그래서 무작정 교회에 가서 엎드려 기도하였다. 그때 이 위기에서 건져주시면 '주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기도하게 되었다. 물론 목회를 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상대방 친구는 회복이 되었고 신앙이 깊으신 학교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1554년 고3 때 몽탄중앙교회가 설립되었고 서리집사가 되었다. 두 군데 부흥회를 다녔다. 천로역정을 읽고 설교했다. 약곡교회에서 오후에 주일학교와 저녁 설교를 했다. 7, 8명의 여자 성도들이 모였다. 지금 신현교회 양성수 장로가 당시 주일학교 학생이었다. 몽탄중앙교회는 당시 40명 가까이 모였은데 두 전도사가 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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