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기장과 예장이 분리했다. 서기행 목사는 1954년 몽탄중앙교회가 몽탄역전교회(축자영감성을 거부함)에서 나와서 설립할 때 예장 편에 섰다
함평군 학교면 사거리에 위치한 학다리중학교와 학다리고등학교를 다녔다. 1551년에 6년제 중학교가 3년 중학교와 3년 고등학교로 제도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학중' 이렇게 불렀다. 학다리는 '학교'의 다른 이름이고 옛날 임금이 함평천을 건널 때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도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한 울타리 안에 있다. 서기행 목사는 '학중'에 전교2등으로 입학한 수재였다. 중학교 2학년 때 6.25 전쟁이 났으며 7월 하순에 이 지역에 북한군이 들어왔다가 9월에 도망쳐 나갔다. 함평 빨치산이 있었으나 엄다면 영흥리 영흥들은 들녘의 작은 동네여서 북한군이 거기까지는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학다리 중학교를 1552년에 졸업하였다. 학다리 고등학교에 시험을 치고 입학하였으며 2등으로 입학했을 만큼 수재였다. 학다리 고등학교는 육상부가 유명하였는데 고2 때 전남 고등학교 선수권에서 100미터에 출전하여 2등을 하였다. 100미터 12초 기록이었다. 1955년 2월에 졸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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