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후에 다니던 몽탄역전교회(몽탄면 사천리, 기장측)에서 축자영감성를 거부하였다. 이것으로 인해 7가족이 나와서 몽탄중앙교회를 개척하였다. 남집사 2명과 여집사 4명이었다. 1554년 6월 6일에 설립하였으며 설립할 때 서기행 목사는 서리집사가 되었다. 몽탄역전교회에서 개척하면서 구산리로 나갔다가 현재는 다시 돌아와서 몽탄면 사천리에 위치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은 1947년에 4월 18일 대구 33차 총회에서 조선신학교의 김재준에 대한 진정서가 제출되었고 결국 1953년에 두 교단이 분리하였다. 김재준의 신학은 신신학으로 불려졌고 대표적으로 축자영감성을 거부하였다.
1954년에 약곡교회(노경수 목사), 대치교회, 사창교회, 몽탄중앙교회가 합동에 속하게 되었다.
몽탄중앙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은 1947년에 4월 18일 대구 33차 총회에서 조선신학교의 김재준에 대한 진정서가 제출되었고 결국 1953년에 두 교단이 분리하였다. 김재준의 신학은 신신학으로 불려졌고 대표적으로 축자영감성을 거부하였다.
1954년에 약곡교회(노경수 목사), 대치교회, 사창교회, 몽탄중앙교회가 합동에 속하게 되었다.
몽탄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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